대청호를 따라서
깊어가는 가을을 보고 있으면
무슨 건수라도 만들어 바깥 나들이를 해야할 것 같죠?
그런데 같이 갈 친구가 바쁘다거나
혹은 저처럼 큰 딸애를 학교에서 6시까지 데리려 가야 되는 상황이면 멀리 갈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워져 가는 추억 가운데 대청호를 따라 드라이브 길를 되살려 냈다.
신탄진에서 대청댐을 따라가다보면 두갈래 길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언덕길을 따라가면 대청호를 따라 옥천까지 이어지는 시골길이다. 이 길을 타고 옥천까지 갔다고 같은 길로 되돌아 오면 2시간 정도가 될 성싶고 혹시 중간에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있다면 더 빨리 올 수도 있을성 싶었다.
이 도로에는 과거와 현재가 상존하고, 시골과 도시가 상존하고, 여름과 가을이 상존한다.
콤바인으로 추수하는 들판을 지나 고개 하나 넘으며 낫을 들고 벼를 베는 촌부가 나타나고, 언덕에 올라가면 몽둥이로 들깨를 털어내는 아낙네가 나타난다. 조그만 힘을 가해도 주저앉을 것 같은 흙담집이 있지만 카페같은 농원들도 눈에 띈고 노래방도 침투하고 있다. 베트남 처녀 주선이라는 현수막위에 과속카메라가 버티고 서 있다. 잎떨어진 줄기에는 감만 매달려 있고, 가지에는 코스모스는 벌써 씨를 맺었지만 은행나무는 아직도 푸르름을 자랑한다. 시대도 다르고, 문명도 다르고, 계절도 다르지만 예술 작품인양 모든 것이 이 길에서는 조화를 이룬다.
대청호의 가파른 비탈은 가물어 붉은 허벅지를 드러내고, 완만한 언덕은 억새풀로 덮혀 있다.
차름 길옆에 멈추고 내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면 마땅한 접근로를 확보하기 어렵다. 들마루라는 식당옆에 간신히 차를 세우고 사진 한장 찍고 왔다.
대청호에서 피어난 안개가 도로를 채우고, 지나가는 로체를 감싸 안듯이
가을걷이 후의 농작물을 지지했던 잔가지를 태우는 연기는 운전자의 정신을 맑게한다.
정시에 딸애를 데려가야한다는 아내의 재촉에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드라이브 중에 보신탕이 있는지 살펴 보았는데 아쉽게도 없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집사님을 주중에 초대할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