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사이다 만들기

크로! 2017. 12. 31. 19:48

어릴적 방학 때가 되면 동네아이들의 땔감을 구하려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생나무를 도끼로 팬 후에 장작으로 말리기도 하지만 대신에 산은 벌거숭이가 되므로 가능한 죽어 마른 나무를 찾았다. 오전 한 짐으로 점심값, 오후 한 짐으로 저녁 밥값을 한다고 나름대로 믿었다. 여름 방학에는 나무 대신에 아침에는 소꼴을 베고 오후에는 소를 먹이로 뒷산으로 나갔다. 

애들은 땔감으로 가득찬 지게들을 뫼앞에 나란히 세워두고 윗, 아래마을로 편을 갈라 축구를 했다. 처음에는 조그만 공터였으나 주위 관목을 야금야금 쳐내어 경사진 축구장을 넓혀 나갔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무 골대까지 만들어 제법 그럴 듯해졌다.


나무는 땔감뿐만 아니라 농기구를 만들거나 놀이를 위해서도 잘라 졌다. Y 모양의 나무는 특히 가치가 있는데 지게, 수레를 만들기 때문이다. 관목의 작은 줄기는 새총으로 쓰이기도 했다. 산을 헤메고 다니다가 그 나무를 눈여겨 보었다가 필요할 때 베어오곤 했다.



핸들과 4개의 바퀴를 달아 어린이 장난감 차같은 수레를 만들었다. 10호 남짓한 농가들이 산등성에 모여 있다보니 마을길이 꽤 가파랐다. 우리는 그 좁은 비탈길에서 수레를 쏜살같이 내리 모는 스릴을 즐겼다. 삐걱하면 옆고랑에 쳐박혀 상처 투성이가 되곤했다.


여름이 되면 포구(팽)나무에 열매가 열렸다. 대나무를 자른 대롱으로 포구총을 만들어 포구열매를 쏘아댔다. 열매가 동이나면 종이를 질겅질겅 씹어 열매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새총은 돌맹이가 탄알이 되기 때문에 놀이기구가 되지 못하지만 포구총은 따끔할 뿐 상처를 남기지 않아 전쟁놀이로 제격이었다.


산골이기에 군것질거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과자를 사오시는 외할머니를 늘 기다렸다. 그 희망도 없으면 커다란 사발에 물을 가득담아 사카린과 베이킹 파우다를 넣어 사이다를 만들기도 하였다. 거품이 일지마는 톡 쏘는 맛을 결코 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하고 나는 시골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