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엿장수

크로! 2017. 12. 31. 19:52

구멍가게도 없었던 우리 마을에서 가장 반가운 손님이 엿장수였다. 리어커하나 간신히 들어오는 동네 어귀에 엿판을 두고 집집마다 찰깍 찰깍거리며 고물을 찾아 다녔다.


제법 쓸만한 물건도 엿장수는 팍 밟아 놓고 이제는 고물이라며 선수를 치기 때문에 우리 할머니랑 실랑이를 간혹 벌였다. 나야 엿 얻어 먹을 양으로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찌그러진 깡통이라도 없는 날이면 할머니의 빠진 머리카락을 뭉쳐 엿과 바꾸어 먹었다. 할머니가 빗질을 할 때마다 머리가 더 빠지기를 바라는 나쁜 손자가 된 것도 그 엿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은 학교를 파하고 하교길에 엿장수를 만나는 경우이다. 그러면 리어카를 재 넘어까지 밀어주었고 보답으로 받는 엿 한가락에 즐거워 했다.


하루는 우리 동네 어귀에 들어 서니 엿판만 남겨 두고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개구장이 친구랑 장난기가 발동하여 서너개의 엿가락을 훔쳐 동네 뒷산으로 숨었다.


죄책감 때문에 엿 맛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친구 앞에 나약한 모습을 먼저 보이기는 싫었다. 엿장수가 숨어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느낌에 땅거미가 진 후에 어슬렁 어슬렁 내려왔다. 이후에 한 동안 엿장수만 보면 피해 다녔다.


70년대 중반에 옥포 조선소가 건설되면서 우리 마을에 도로 공사를 많이 했다. 그러자 폐철사 구하기가 쉬워지고 엿장수에 대한 열기도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