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조상을 찾아

크로! 2017. 12. 31. 19:59

후속호기 원자력 발전소 제어시스템 구매 평가가 막바지로 치닫던 2002년 5월9일에 아버지 돌아가셨다. 며칠 전 병원에서 뵈웠던 모습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고현 백병원 빈소에 친지 및 직장 지인들이 찾아와 위로해주었다. 대전에서 참 먼거리지만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경남 진동에서 유골을 거두었고 영천 호국원안장하였다.


비록 명절 때마다 찾아 온다고 하나 중학교를 졸업하지마자 떠나버린 고향이 이제는 너무 낮설었다. 외가쪽의 친지며 한 마을만 떨어져 있는 분도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물며 20년이 지난 고향 선후배, 동료는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어 부끄러울 뿐이다.


장례를 마치고 그 기억을 다시 채우고 싶어 먼저 조상의 뿌리를 더듬어 보았다. 어릴 적에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린 적도 있는 그 이야기를 이제는 다시 알고 싶었다. 고향 앞에는 큰 산으로 막혀 인재가 나지 못한다는 옛 예언을 차츰 인정하게 되고, 큰 바위를 닮은 훌륭한 분이란 결국 고향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조상들이 신라 유리왕때 성을 받은 후에 영일(연일)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영일정씨(迎日鄭氏)가 유래되었다. 아쉽게도 신라시대의 수목관계는 전해지지 않고 고려시대부터 추적이 가능하다. 습명(襲明)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극유(克儒)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가 있고 각파의 대표적 후손으로 포은 몽주(夢周)와 송강(松江) 정철(鄭澈) 할아버지가 계신다.



후손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조선시대 정지충(鄭智忠) 할아버지가 사육신을 옹호하다 진주로 귀향왔다고 한다. 그 후손들이 진주에서 사천,고성,거제로 터전을 넓혀 갔고 그 중의 한 놈이 습명할아버지의 31대손이 되었다.


30세대의 역사 동안 남도 거제까지 내려 왔으나 나는 요즘 3시간여 만에 거제, 사천, 진주 그리고 대전으로 되돌아 간다. 뿐만아니라 조상의 문학적 자질과 우국충정은 간데없고 천박한 글과 지리산에 부딪쳐 사라지는 구름처럼 변덕스럽다. 할아버지의 고귀한 충정과 문학적 자질이 내에게는 2의 20승으로 희석되었다면 할아버지도 용서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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