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논문 요청이 오면 딱 잘라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논문을 제출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해외출장을 까다롭게 제한하기 때문에 출장은 나가지 못하고 논문만 게재되곤 했다. 이번 논문도 그런 마음으로 제출하였는데 운좋게 출장허락이 났다.
동행한 분은 저와 6년동안 같이 과제를 수행했지만 설계에 대한 이견으로 헤어진 상사이다. 항공기는 따로 갔지만 숙소도 식사도 같이 했다. 저는 골프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분은 잠바까지 주면서 골프로 나를 초대했다. 큰 바위산를 병풍처럼 두고 거칠은 대지에 군데 군데 잔디가 덮힌 골프장이다. 내가 생의 첫 골프를 너무나 멋있는 장소에 치게되었다고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다본다.
발표한 논문은 전산화절차서이다. 이 제품은 2001년에 개발하여 웹에 올려 놓고있다. 이 제품 때문에 같이 동행한 상사와 틀어졌는데 이제는 내가 논문을 발표한다고해도 그는 무덤덤하다. 아마 세월의 힘이리라 . 저가 발표를 할 때 많은 청중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야 전문가는 대부분 자리를 하였다. 또한 미국 독일등 개발자들도 저의 소프트웨어와 유사한 형태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발표가 끝나자 Session 진행자는 자기 나라 남아프리카에서 전산화절차서를 도입하면서 나의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며 지원을 요청하였다.
숙소를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흡연자 방에서 기거하였는데 방에 밴 담배 냄새가 역겨워 창문을 열어두고 잔 바람에 감기에 들고, 사막에서 뒹군 덕분에 손등이 트고, 일주일 비운 사이에 회사 일들 때문에 기분이 우울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후 4년동안 일어난 조용한 변화를 이번 학회를 통하여 확인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학회가 열린 앨버커키보다 인접한 산타페가 유명하다며 같이 가지는 권유를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정중히 사양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산타페를 보고 싶은 욕망은 없었다. 왜냐하면 앨버커키의 사막에 꽃을 피우는 하나님, 인기없는 분야에 진리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 불편함 가운데 변화를 유발시키는 하나님을 경험하였기에 굳이 산타페까지 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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