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소설 '메일꽃 필 무렵'을 기리기 위해 평창에 이효석 문학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이 문화관을 철 지난 다음에 방문하고 쓴 '메밀꽃 질 무렵'이란 수필을 본 적이 있다.
지난 금요일 교회 가는 길에 타운하우스의 목련을 보았다. 꽃봉오리가 터질 듯한데 심술궂은 쌀쌀한 봄비에 젖어 애처로왔다. 피어보지도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되어 아내에게 말을 건냈더니 '봄비에는 목련이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꾸하였다. 아마 봄비에 꽃이 피고 바람에 꽃이 떨어진다는 시구를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봄비'가 아니라면 '가을비'에 목련이 떨어진다는 말인지 되물었다. 가을에 목련이 피지지도 않는데 말이 되느냐면 추궁을 하였다.
발전소에 출장을 다니다보면 간혹 명소에 다니기도 하는데 전라도 고창에 가면 청보리밭이 있다. 넓은 밭에 가지란히 자란 보리을 보노라면 맘이 상쾌하여 질 만도 하다. 철 지난 다음에 찾아간 그곳에서는 청색은 간데없고 누런 보리 까끄라기가 우리 피부를 찌르고 있었다.
새로 이사간 우리회사 건물은 산의 북쪽 사면이라 꽃들이 드물다. 반면에 도룡동은 남쪽 사면이라 꽃이 많은 편에 속한다. 목련이 피고 있다는 사실도 교회 올 때 처음 보았다. 더구나 지난 일요일 축구하다 무릎을 다쳐 점심시간에 산책도 하지 않는다.
혹시 저처럼 꽃이 질무렵 찾아가 아쉬워 하지말고 꽃이 피는 소리를 느껴보시시기 바랍니다. 봄소풍가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간증도 감동적이지 않겠습니까? 사울은 눈의 비늘이 벗겨져 예수님을 알아 보고 바울되었다는데, 저도 과학의 껍질이 벗겨져 예수님을 볼 수도 있겠죠.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민감한 능력을 부여 받고 싶네요. 그래서 자연의 섭리인 '연섭'이 아니라 신의 섭리인 '영섭'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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