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현충일에 홍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불경스럽게 여겼지만 내가 그 당사자일 줄이야.. 이번에는 6.25참전 용사로 아버지가 묻힌 영천 호국원에 찾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꼭 피하고 싶은 날에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위안을 삼자마자 서해의 섬들을 여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홍도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2박3일을 계획했지만 목포에서 새벽 쾌속정 출항시간을 맞추다보니 저녁에 출발하게 되었고 결국 3박이 되었다. 홍도뿐만 아니라 목포도 첫걸음이었다. 주차를 하기 무섭게 맥주로 목을 축였다. 간결한 내부장식 때문에 마치 80년대의 대학생으로 되돌아간 양 떠들었지만 내일을 생각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남해 프린스는 목포를 빠져나와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약 110Km 거리를 시속 70Km로 이동이니 2시간이니 족하다. 입항하는 배위에서 본 홍도는 삼 사십 미터 바위절벽이 바다위로 솟아있고 그 안쪽에는 푸른 초원이 산기슭을 이루고 있다. 그 다음부터 산정상까지는 동백나무로 우거져 있었다. 그 산비탈의 초원은 스위스 알프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산 정상까지 등산을 했다. 저기가 정상이다 했다가 좌절하기를 몇차례 후에 기념사진을 남길 수가 있었다.
섬을 종단하는 조그만 고개를 따라 걸으면 홍도의 생활을 모두 볼 수있다. 오백명 남짓한 주민에 대부분 현대 문명은 유입되어 있다. 옛날 최기철님의 "홍도의 자연"에서 종로를 홍도로 옮기고 싶지 않다는 소망은 도시민의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 점심후에 유람선을 타고 홍도 해안선을 구경하였다. 거제도 해금강의 아름다음에 무감각했졌는지 안내자는 열심히 설명 했지만 내 눈귀에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이었다. 연착되는 시간을 해삼과 멍게로 달래고 오후 늦게 흑산도행 배를 탔다.
30분간의 달콤한 졸음 후에 흑산도에 도착하였다. 홍어와 동동주로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니 주인장의 낚시 나오라는 쪽지가 있다. 속이 편치않지만 우르르 나가 전복 가두리 틀에 앉아 우럭을 잡았다. 서너마리 씨알을 보더니 아침 먹고는 좀 더 밖으로 나가기를 권유한다. 귀한 전복으로 아침을 대접하지만 어제 술 때문에 먹는 둥 마는 둥 자리를 지켰다.
이번에는 좀더 구석진 해안으로 갔다. 북한 간첩이 숨었다는 동굴이 가까이 있다. 저멀리 조류를 타고 짙은 남색 바닷물이 밀려오자 우럭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정신이 없다. 여러번 낚시를 갔지만 이런 횡재는 처음이었다. 기쁨도 잠시 우럭이 통에 넘치자 처치할 방법이 없다. 산채로 가져 갈 수도 없고... 욕심없는 도시 사람을 처음 본다며 주인 아저씨는 나무라면서 부두로 되돌아 왔다. 우럭 배를 갈라 햇볕에 말렸다. 노동인지 여행인지 ...
셋째날은 흑산도를 일주 여행을 하였다. 공고롭게도 기사 양반이 발전 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분이라 직업의 공통점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의 뾰족한 돌에 터진 바퀴를 갈고 있는 동안 근처 최익현선생 유적지에서 비문을 완전 해석하였다. 곳곳에 유적이 많지만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현실적인 학문에 감탄한다. 늦은 아쉬움은 있지만 실사구시의 학문이 존재했다니 안도가 된다. 일주의 종착지인 상나봉에서 "흑산도 아가씨"가 숲 너머로 퍼져 나가고 우리는 엉큼 성큼 반월성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