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수안보 연수

크로! 2017. 12. 31. 20:02

나는 아직도 회사의 복지 혜택을 받을 때 마다 죄짓은 느낌이 든다. 마산 고등학교를 다닐 때 큰 태풍 때문에 시골 벼농사를 망친 적이 있다. 정부에서는 피해 농가의 자녀들에게 수업료를 면제시켜 주었는데 나는 너무 부끄러워 그 피해 서류를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아버지가 되었지만 그 당시 나의 아버지는 얼마나 귀가 찼을까?


차츰 차츰 철면피가 되어 가지만 그래도 앞서 나가는 편은 아니다. 회사 입사후에 6년이 되어 가도록 복지 혜택을 찾아 먹지 못하는 내가 처량했는지 작년부터 내에게 우선권을 준다. 또 학교 다니는 두 딸과 아내의 일이 있다보니 쉽게 승낙을 할 수도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일상 생활에서 권태를 느꼈는지 바가지를 긁는다. 마침 수안보 연수 기회가 왔고 무작정 신청을 하였다. 방학전이라 좀 걱정은 되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도 갈 기회가 없으리라. 저녁이 되어 조심스럽게 애들에게 알려주니 학교가지 않아도 된다며 오히려 좋아한다. 

 

연수원에서 점심할 양으로 바삐 움직였지만 오후 1시가 훨씬 지난 후였다. 4일간의 일정표를 받고 보니 저녁부터 연수원 식사가 제공된다고 한다. 호들갑을 떤 것이 좀 우스웠지만 수안보 시내의 음식맛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릴적 고기가 귀할 때 먹은 꿩이 생각나 도리탕을 주문했는데 입맛이 변하였는지 옛날 맛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충주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배는 이골이 나도록 타보았기에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강을 따라 펼쳐진 풍경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곳곳마다 서려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청풍 문화재단지를 거쳐 단양 8경을 지나고 있었다. 

 

오후에는 단양 고수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첫 발견후에 색이 바랬지만 꼬불꼬불한 미로와 웅장하고 섬세한 동굴은 자연의 힘으로 빚어진 우연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미탐사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외길을 따라가니 들어간 입구가 아니다. 영월 친구가 일전에 "동굴안에 연기를 피우면 산등성 여기 저기에서 굴둑이 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출구도 자연적인 동굴이기 보다는 조그만 구멍을 넓힌 흔적이 있었다. 5억년전부터 물이 스며들어 동굴이 형성되기까지 무수한 의문들이 지나갔다. 

 

장마가 북상하여 계속 비가 내린다. 월악산 송계 계곡을 따라 산행을 계획했지만 부모님을 모신 식구들은 비 때문에 입구 식당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 가족만 마애불을 보기 위해 산속으로 향했다. 장대비가 솓아지고 인적은 없다. 거의 다왔다 싶은데 정상까지의 푯말외에는 마애불의 흔적이 없다. 길을 잘못 들었는가? 몇 걸음을 옮기다 되돌아 왔다. 표지판을 탓하지만 이번 연수 기간중에 두번이나 실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실수는 영천 고속버스 진입로를 잘못 읽어 결국 국도를 탔었다. 그 때도 도로공사의 표지판을 원망했었지. 일찍 숙소에 도착하여 수안보의 지표 온천수 사워와 사우나로 장마의 축축함을 날려버렸다.


마직막 날에는 일찍 퇴소한다. 우리는 현충일에 못 찾아간 영천을 향해 출발하였다. 밤새 내린 물로 문경의 낙동강 상류는 수위가 높았다. 안동가는 국도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잘 놓여 있었고 하회마을 표지판이 나타났다. 빅토리아 여왕 방문 후에 유명하다기에 차을 세웠다. 낙동강이 그 마을을 태극 경로로 흐르고 전통 한옥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안데로센의 마을 오덴세가 연상되기에 외국인이 즐겨 찾는 것이 아닐까?



안동에서 영천까지는 35번 국도가 놓여 있다. 이 도로는 산계곡을 따라 약 80Km 인데 도로 따라 난 하천에는 물이 콸콸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 도로가 단절되지 않을지 무서움이 밀려왔다. 동남쪽에 이런 길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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