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부안군 위도에 원전수거물 처분시설을 유치하려다 홍역을 치른 후에 정부는 제도를 보완하여 재추진하고 있다. 주민투표를 도입하여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도록 하였고, 수거물 시설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후대 정권도 책임지고 시설을 관리토록 하였고, 사용후 연료를 반입하지 못하도록 명시하여 핵 재처리 우려를 사전에 없앴다. 그렇지만 사업자의 본사 이전, 3천억원 특별 지원금, 양성자 가속기 유치, 수거물 반입 수수료 징수, 지역 개발 등 혜택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일부에서는 본사 이전을 아쉬워하고, 사용후 연료 저장 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장래의 추가 투자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용후 연료 재처리에 관한 한 국제적 감시와 압력을 받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사용후 연료를 건드리지 않는 편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투명한 유치 절차, 영속적 관리, 경제적 혜택 약속은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원전수거물 사업자에게도 유리하다. 주민 동의 없이 건설되면 200년 동안 사업자는 비난의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주민들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치 결정을 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은 이 시설의 안전성, 경제성, 유지관리 측면을 곰곰이 따질 필요가 있다. 지난 부안에서 지역 주민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현수막이 나부끼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주제는 전문가도 명쾌하게 대답하기 곤란하다. 귀가 아프도록 설명을 들어 왔지만 뒤돌아서면 여전히 허전하다. 사실 정답이 없는지도 모른다. 사용후 연료, 환경문제, 처분시설의 장기간 유지라는 3가지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사용후 연료는 타고 남은 연탄과 같은 재이다. 80년대 수거되지 못한 연탄재가 골목 바닥에 뒹굴곤 했는데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로 이기적인 우리를 나무랐다. 얼핏 보면 사용후 연료도 그 꼴이다. 그런데 기피 대상인 사용후 연료는 아직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타다 남은 사용후 연료는 재차 점화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예정이다. 내막이야 어떻든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사용후 연료는 저준위 폐기물에 비하면 방사능 준위가 높아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번 유치지역에 사용후 연료를 반입하지 않으니 부안의 첫 번째 갈등 요인을 제거한 셈이다.
둘째 환경 문제이다. 더 엄밀하게는 원전수거물 시설의 환경 문제와 원자력 발전의 환경 문제로 구분할 수 있다.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을 떠올리면 수거물 시설을 멀리 하고픈 심정을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채에서 떨어진 시골 재래식 화장실을 기피하여 이틀 동안 참은 아이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당과 맞닿은 화장실로 급히 달려갈 때, 속담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외국 사례에서 보듯이 원전수거물 시설은 환경 친화적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설 시설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는 소음도 없고, 먼지도 없고, 악취도 없고, 썩는 물질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한다. 대학 졸업 후 같은 직장을 다니다 나는 원자력 산업계로, 한 후배는 정신과학 분야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의 전직 이유가 특이했다. 자신은 이제까지 해충을 죽이는 농약을 합성했지만 이제부터는 생명을 살리는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농약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이었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생명을 빼앗는 독이라 간주했다. 그는 원자력에 몸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산업발달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전에는 한 사람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많지 않았다. 석유가 없어도, 원자력이 없어도 먹고 살았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가 낮은 시대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면 사람대접 못 받았다.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작업 능률이 향상되면서 여유가 생기자 자신의 권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민주주의는 도전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에 의해 작동하는 문명의 기기들이 있었다.
석유나 석탄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기 수십억 년 전부터 태양 에너지를 받은 식물이 차곡차곡 땅속에 묻힌 것이다. 최근 수백 년 사이에 인류는 그런 귀중한 자원을 뽑아내어 맹렬히 태워버리고 있다. 그 연소로 인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도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규제하는 쿄토 의정서에는 생존을 위해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으니 다행 아닌가?
미래의 다양한 에너지원이 거론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태양에너지나 핵융합에너지 외에는 별 방도가 없다. 지구표면에 내리쬐는 태양에너지는 현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만 배 이상이라고 하지만, 태양광 발전을 위해 막힌 하늘을 상상하여 보자. 유해한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고, 우산 없이도 비에 젖지 않아 편리하다? 그러나 식물이 그늘 아래 어떻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태양광 발전은 원자력 발전에 비하여 현재 10배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니 발전량도 충분하지 않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태양광 발전 효율을 높여야한다.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쓰리마일 사고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상당기간 주춤하고 있지만 건설 재개의 기운은 무르익었다. 60달러의 석유값이 20달러로 다시 곤두박질 할 수 있을까? 고유가가 중동의 정치적 문제나 대서양의 하리케인 때문일까? 유한한 석유 매장량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이므로 석유가격은 계속 높게 유지될 전망이다. 원자력의 대안 에너지로서 태양광, 풍력을 제시하지만 오히려 원자력이 대안 에너지이다. 궁극적 에너지인 태양광 및 핵융합 발전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과도기간 동안 환경 친화적 대안은 원자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더 값싸고 안전하게 장시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원전수거물 처분시설의 장기간 유지문제이다. 현 정권이후에도 시설이 관리되도록 법제화 되어 이 문제는 별 것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법령으로 관리자가 상주하고 환경단체가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설비 자체의 고유 안전성이고, 관리하는 종사자의 든든한 신뢰이다.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이 누출된 후 법령에 따른 처벌보다 원천적으로 방사능이 누출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원전 수거물속에는 폐장갑, 작업복 등이 들어 있다. 단 일초라도 한 눈을 팔면 사고가 발생하는 자동차를 보다가 원전수거물을 들어다보면 무엇 때문에 호들갑이냐고 의아해 할 수 있다. 수거물의 유일한 위험은 방사능이다.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으니 피폭되는지도 모른다. 또한 방사능은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지만 반감기가 사람 수명보다 긴 경우가 있어 200년 동안 땅에 묻어 두어야한다. 그래서 수거물에 대한 일반사람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거물에서 방출되는 량은 일상생활에서 받는 자연방사능의 1%도 안 된다. 우리가 수거물 시설을 가로질러 반대편 낚시터에 빨리 가지 않음은 방사능보다 울타리의 장벽 때문이다.
원전수거물 시설은 고유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원통에 담겨진 수거물 바깥에는 시멘트가 채워지고, 더 바깥에는 물이 침투 못하게 두꺼운 흙이 덮고 있다. 이 정도 무장이면 방사능이 누출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지표와 지하에는 누출 감시기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시설을 작동시키려 휘발유나 전기를 공급할 필요도 없다. 네덜란드 용감한 소년처럼 주먹으로 둑 구멍을 막지 않아도 원전수거물 시설은 선천적으로 안전하다. 먼 훗날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무슨 유물을 묻어 둔 줄 알고 도굴을 하더라도 그 다음날에 똑같이 덮고 '유물 없었음'이라는 표지판만 세우면 된다.
멋있는 건물을 지어 놓고 200년 동안 반입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한편 200년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조선 왕조는 오래 지속 되었지만 한 왕조가 200년 존속하기 어렵다. 반만년 역사동안 외침은 얼마나 많았는가? 주식을 사서 3년 묵혀 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휴지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지 않았는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다. 이 명언을 조금 비틀면 해답이 나온다. 사업자와 지역 주민의 자손들은 수거물 시설 주위에 터전을 이루고 살아 갈 텐데 그들이 시설을 영원토록 지키는 주인이다. 전쟁 중에도 실험실을 지킨 고대 그리스 기술자 아르키메데스처럼, 그 자손 중에 원전수거물 시설에 충실한 과학기술자가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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