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로마까지 하루만에 입성해야 된다. 나폴레옹도 못 탄 Escort를 타고. 지중해 해안 따라 고속도로가 뻗어 있다. 그러나 니스로 가는 고갯길보다는 덜 즐겁다. 이탈리아도 유료 고속도로다. 목적지에서 신용카드로 결재한다. 몇 번 신용카드를 뱉어내어 수동으로 조작했는데 아직까지 독촉장이 날아 오지는 않았다.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 요금을 받는다. 요금 표시도 없다. 큰 돈과 작은 돈을 내밀자 큰 돈을 주워가고 거스름돈은 없다. 아! 이렇게 비싼가 하고 갸우뚱하는 사이 옆 사람은 그냥 들어간다. 역시 반도답게 여유가 있는 사회이다. 그렇지만 긴장을 풀지 않는다.
주위 풍경도 우리네의 고속도로 풍경과 닮았다. 미국 엔지니어인 Fuld는 잠수함에서 내려 이탈라아를 여행할 때 한반도와 닮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풍경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원두막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센 바람에 지붕 태울까 봐 온 가족이 동그라미로 서서 조마조마했다. 운전 습관도 비슷하다. 바싹 뒤에 차를 붙인다. 로마의 그 번영은 어디 가고 이런 몰염치한 후손들만 남았을까? 우리 연구소의 이탈리아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래도 영향력 있는 친구들인데...
저녁에 Tiber 캠핑장에 도착했다. 나무 그늘 밑 넓은 잔디밭이다. 환상적이다. 수영장도 있다. 캠핑 온 학생들로 붐빈다. 아침 저녁으로 왕복하는 캠핑 버스에 내려 전절로 갈아 탄다. 전철에는 온통 낙서투성이다. 무슨 내용일까?
중앙 역에서 시내지도를 받아 들고 보행 경로를 그린다. 이때 알프스 빙하속에서 마주쳤던 한국 가정을 다시 만난다. 반갑다. 한 붓 그리기를 적용하여 콜로세움에서 출발한다. 외벽을 반 바퀴 돌고 줄을 섰다. 어린이 할인 요금이 없다.
기대와 다르게 원형경기장의 바닥 평평하지 않다. 완전히 미로다. 무슨 경기이기에 장애물이 많지?
관중석 따라 돌면서 만인의 즐거움을 위해 한 사람이 죽어도 되는 로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가까운 거리에 로마 포럼이 보인다. 남아 있는 기둥만을 보아도 옛 로마 제국의 번영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만약 어릴 때 이런 유적을 보았다면 내가 과학자가 되었을까? 아마 역사를 선택했으리라. 정말 이 포럼을 무대로 펼쳐진 이야기가 궁금하여 귀를 세우지만 기둥은 말이 없다.
언덕 위에는 베네치아 광장이다. 땀을 흘리며 판테온 신전을 찾아 간다. 발을 내딛는 골목마다 역사의 보물이다. 조상 덕에 잘 산다고 하지만 유물의 가치를 아는 민족이다. 거리들이 비슷하여 방향 감각이 없어진다. 이럴 줄 알았다면 노르웨이에서 오리엔티어링을 더 열심히 할걸.
어! 타원형 광장의 Navona다. 아무러면 어때.
베르니니의 분수에 걸터앉아 로마 역사를 들이킨다. 시원한 물방울이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 광장을 빙 둘러 바로크(?) 건물이 호위한다. 볼 폼 없는 Borromini의 작품을 외면하려 Bernini의 인물상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고 나중에 들었다. 두 사람은 동 시대의 경쟁자였다고 한다. 글쎄 꽉 막힌 공간에서 오는 폐쇄 공포증은 아닐까?
활기를 되찾아 판테온 신전을 찾아간다. 미켈란젤로가 감탄했다는 돔형이다. 높이와 지름이 같다고 한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기학학적인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다. 천정의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비가 와도 새지 않는다고 한다. 공기 대류의 영향일까?
Trevi 분수로 간다. 한국식당에 들러 피자를 사 길가에 쭈그리고 앉는다. 로마의 방랑 끼를 느낀다. 우리도 다시 올 수 있을까? 나민이 해민이가 던진 동전이 물속으로 풍덩 가라앉는다.
선남선녀가 계단을 꽉 메운 스페인 광장과 오벨리스크의 Popolo광장을 지나 다시 전철을 탔다.
로마 미술관을 가까스로 찾았다. 유명하다는 미술관이 고작 프레스코다. 그것도 감시가 심하다. 글쎄 돌 타일로 이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무늬를 표현하기는 힘들겠다. 그렇지만 그 여행 책자는 바티칸 미술관과 로마 미술관을 바꾸어 표기한 것 같다.
완전히 녹초가 된 둘을 달래어 진실의 입으로 향한다. 전철에서 내려 한참 간다. 몇 번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걸었다. 나민이와 해민이가 두 손을 동시에 넣었다. 거짓말 진단이 힘들겠지.
2000년 로마 역사를 하루의 느낌으로 이해해도 괜찮을지?
다음날은 바티칸에 갔다. 긴 행렬이 베드로 성당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와! 이럴 수가.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을 본 적이 없다. 역시 미켈란젤로에 대한 찬사가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쪽 방에서는 미사를 드린다. 여행으로 들뜬 마음이 가라앉는다. 결국 바티칸 미술관은 주일이라 못 보았다. 아쉽다.
나오는 입구에서 성모상과 기념품을 챙긴 후 일치 감치 캠핑장으로 되돌아 왔다. 길가의 트럭에서 과일을 샀다. 오후에는 수영장에서 물놀이 했다.
소매치기와 무질서의 선입관은 로마 유적의 찬란함으로 뿌리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