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노르웨이 생활

크로! 2017. 12. 31. 19:53

98년 12월 30일 서울을 출발하여 오슬로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이다. 북극 지역답게 이미 한밤중이었다. 연구소에서 마중 나온 인자한 아저씨가 반긴다.


서투른 영어로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쏟아지는 잠을 떨쳐보지만 역부족이다. 졸면서 잠깐 잠깐 밖을 내다보니 길가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두시간만에 할덴 집에 도착했다. 여섯 집이 인접한 연립주택이다. 식탁에는 예쁜 꽃이 놓여 있다.  


아침 10시 되어도 주위는 밝아지지 않는다. 땅바닥도 공기도 축축하다. 이곳의 겨울은 비가 많고 여름은 비도 적고 하늘이 맑다. 이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려고 점퍼를 샀다. 방수 방풍이 다 된다.


은행에서 계좌를 열고 스웨덴의 싼 가게를 소개 받았다. 그리고 자동차를 빌렸다. 원유값이 떨어져 노르웨이 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 왔다. 덩달아서 이자율이 올라 차 임대 비용도 비싸다.

8시부터 4시까지가 근무 시간이다. 아침 사무실의 진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두어 달 후에 나도 이 커피에 길들여졌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기술자 마리오와 사무실을 같이 사용했다. 참 친절하다. 7월에 개인 사무실로 이사한 후 하루종일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렵다. 우연히 찾은KBS FM의 인터넷 방송이 사무실을 선율로 채운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오슬로 한인교회와 할덴의 실내 아이스링크를 번갈아 출석했다. 한인 교회는 약 30명 출석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운다. 교포와 상사의 주재원이 핵심 멤버다.


할덴은 바닷가에 인접하여 눈이 와도 순식간에 녹기 때문에 스키 타기가 쉽지 않다. 눈이 내린 어느 하루는 아이스링크에 갔는데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눈 녹기 전에 크로스 칸츄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의자를 밀고 다니면서 배운 스케이트로 우리 겨울은 따분하지 않았다. 

     


할덴 근처에는 피오르드에 물을 쏟아 내는 호수가 많다. 이 호수를 이어서 가면 스톡홀름까지 뱃길로 갈 수 있다고도 한다. 이 호숫물을 이용하여 발전을 하고 한 때는 이 호숫길을 따라 목재가 운반되었다. 그런데 그 호수는 겨울에는 꽁꽁 얼어 붙어 스케이트에 적격이다. 반면에 여름에는 수영객으로 붐빈다. 아쉽게도 누드는 아니다. 호수가 진흙탕이 아니고 굵은 모래로 깔려있다. 

 

4월경 부활절 후에 자동차 타이어를 여름용으로 바꾼다. 만약 부활절 이후에 눈이 온다면 꼼짝 못한다. 겨울에서 깨어나는 부활절 휴가를 준다. 대부분의 노르웨이 사람은 이때 북쪽으로 스키 여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톡홀름으로 봄 나들이를 했다.


연구소에서는 외국에서 파견 온 기술자들이 많다. 서로 동호회를 만들어 배구 및 축구를 한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땀을 흘릴 때 서로 친구가 되었다. 여유로운 토요일이나 한 엔지니어가 오고 갈 때면 조촐한 파티를 열곤 했다. 우리는 일본 엔지니어와도 왕래가 잦았다.

  

오슬로 북쪽에는 유명한 스키장이 많다. 2월쯤 연구소에서 단체로 스키를 타러 갔다. 높고 넓은 산 전체가 결코 여름에도 녹지 않을 눈으로 덮혀 있었다. 초보라서 신나게 놀지 못했지만 그 경치는 잊을 수 없다.



5월 17일은 독립기념일이다. 학생들이 100M 남짓한 보행자 도로를 따라 행진을 한다. 나민이 해민이도 그 대열에 끼었다. 우리는 평상복으로 구경을 갔는데 할덴 주민들은 모두 정장을 하고 참석한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동참한다. 손님이 분위기를 깰 수 없어 다시 집에 와서 콤비로 갈아 입었다. 이 고장의 자랑인 성(요새)에서는 기념 폭죽으로 시끄럽다. 이 성은 스웨덴의 침공에도 끄떡 없었다고 늘 자랑해 왔다. 


시내의 보행자 도로는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새해가 되면 인근 주민이 모두 몰려나와 환호성을 지른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도 국가라는 동질성을 유지시키는 끈이다. 유고 공습이 한창이던 4월에는 평화의 시위가 있었다. 


여름이 되자 노르웨이 생활이 바빠진다. 5월 말에 피오르드를 구경하고 6월에는 유럽여행에 올랐다. 5월부터 봄이 왔고 6월이 하지이므로 7월에 접어 들면 가을이 되겠지? 그렇지만 우리가 되돌아 온 7월 이후에도 따뜻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회사 일이 끝나면 매일 낚시를 다녔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구석 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같은 회사의 새댁은 아기 낳기 전 낚시가 덕이 아니 된다고 했다. 우리집은 끄떡없다.


토요일은 스웨덴의 시장에 가거나 수영을 했다. 스웨덴의 카프리 해수욕장은 너무나 물이 맑다. 이것에 싫증나면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따고 딸기 밭에서 딸기를 샀다.


가을로 접어들자 더 열심을 내었다. 산속에는 블루베리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남색 열매를 따 먹는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속으로 일본 엔지니어와 버섯을 따러 가기도 했다.


분주했던 한 시즌은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야간 오리엔티어링으로 마무리 된다. 밤에 손전등과 지도와 캠버스에 의지하여 목표물을 찾는다. 행사가 끝난 후에 음료를 들고 새우를 까서 먹으며 흥을 낸다.


찬바람이 불면 겨울이다. 조용히 힘을 비축하는 계절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까지는 행사 준비로 들떠 있다. 가게에는 크리스마스를 밝힐 조명기구로 가득 찬다. 집집마다 창 틀에는 촛불이 놓인다.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준다.


크리스마스가 끝나자 새해 맞이가 시작된다. 2000년을 맞아 모두가 희망에 부푼다. 그렇지만 우리는 돌아갈 준비로 바쁘다. 집을 치우고 자동차를 반납했다.


우리는 중국 엔지니어의 가정에서 만두를 빚어 먹고 폭죽을 쏘며 2000년을 맞았다.


1월2일 Y2K버그를 피해 대한항공을 탔다.


꿈만 같은 노르웨이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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