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그 밤 먹지마라

크로! 2017. 12. 31. 19:39

99년 노르웨이에서 1년 살았다. 가을이 저물어 갈 무렵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쬐려 열심히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왜냐하면 긴 겨울을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오슬로 한인 교회에 갔다오는 길에 Moss에 들렀다. 굳이 핑계를 대라면 Moss의 항구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고 교민이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유럽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도시도 조그만한 마을이기에 항구 찾기는 쉬웠다. 아직 겨울이 오기는 이른 계절이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 춥고 비가 내렸다.

항구앞 KRO에서 커다란 햄버거를 먹으며 비가 개이기를 기다렸다. 가게 아가씨는 부두끝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고 귀띔하였다.


햄버거를 다 먹었건만 비는 여전히 내렸다. 할 수없이 우리 가족은 부두를 향하여 걸었다.

갑자기 아내가 "밤이다"라고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길위에 뒹구는 수많은 밤들... 한국밤보다 휠씬 예쁘다. 고개를 드니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낚시에 대한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 가족이 달려들어 밤을 주웠다. 지나가는 노르웨이 사람도 주워 주었다. 우리 가족은 너무 행복하였다. 저희가 이 밤맛을 모름에 감사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2Kg정도 주웠고 호주머니마다 가득 찼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쉴 새없이 지껄였다. 새댁에게도 나누어 주고 일본애들에게도 자랑해야지. 먼저 새댁네에 들러 한 움큼 들어 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냄비에 밤을 삶기 시작한다. 보기가 예쁘니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하면서. 부엌에 증기가 가득하고 군침이 돈다.

한입 깨물었다. 부드러운 속살... 그런데 이게 무슨 연고인가? 쓴 맛이 돈다. 온 가족이 내뱉었다. 

 

용덕가 그 밤 먹지마라.

다음에 밤 주우면 남 줘야지. 그 노르웨이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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